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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수양회]
 

이름  오요한 날짜  2009-05-02 조회수  125
자   료   없음
타이틀   09중부 유럽 수양회 보고
성경구절   

중부 유럽 수양회 보고

1. 참석하기까지

먼저 한 사라 선교사님이 참석을 요청하는 전화를 왔습니다. 그러나 물질문제도 있고 우리 천안 수양회가 중부유럽수양회 후에 곧바로 있기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힘에겹게 물질적으로 지원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양회에 가고자 결정하였습니다. 수양회 참석 전에 학생 3명 참석을 기도하였는데 그것을 마무리 짓고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황재훈 서준용 형제가 완전등록하게 하시고 이주현 자매가 가겠다고 말을 하고 주일 예배에도 나오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전에도 그라츠에 갔다 왔을 때 사단의 역사가 있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염려가 되엇습니다. 그러나 뒷일은 하나님과 마가 모니카 이삭 목자님께 맡기고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2. 오스트리아까지

하나님은 비수기라 88만원 정도의 싼 가격으로 왕복 티켓을 끊고 뮌휀을 거쳐서 오스트리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에 평상시 안 나오던 목자들까지 나와서 기도해주시고 공항에는 모니카 은혜 목자님이 나와서 배웅하여주었습니다. 드디어 독일 루프탄자 비행기 기내에 올랐습니다. 창가에 자리가 나와서 광활한 대륙을 보았습니다. 가도가도 끊없는 구름 바다 멀리 보이는 들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시간으로 밤이 되어도 거꾸로 가기 때문에 어둡지 않고 밝기만 하였습니다. 지구가 둥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구에 인류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나는 헬라어 단어를 외우고자 방향을 잡았지만 밀려오는 졸음으로 거의 많은 시간 잠을 잤습니다. 이렇게 비행기에서 많은 잠을 자는 것은 오스트리아서에서 시차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여승무원이 나에게 와서 인사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반갑게 나를 아는척하였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나 의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승무원을 부르는 단추를 눌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단추가 있기에 이것저것 눌러보았더니 승무원이 왔던 것입니다. 전에는 승무원이 식사 주문받을 때 하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뮌휀에 가까이 갔을 때 내가 갈아타야하는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승무원이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비엔나라고 하였는데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국 승무원을 불러서 말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승무원은 아! 비에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어식 발음이 비엔나가 아니고 비에나였습니다 그는 친절히 나에게 바뀐 게이트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착시간이 늦어져서 갈아탈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가 6시 비행기인데 다시 30분에 뮌헨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는 부랴 부랴 달라서 갈아타는 게이트로 갔습니다. 그곳에 갔을 때는 6시가 거의 되었습니다. 비행기에 적어도 10분 전에 탑승해야하는데 나는 늦었습니다. 비엔나에 늦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30분 늦게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딱맞게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갔습니다. 독일어로 출구가 쓰여 있어서 공항에서 어디로 나가는지 짐을 어디서 찾는지 정확히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략 아우트팡이라고 쓴 것이 출구라는 것을 짐작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향해서 그곳으로 나갔습니다. 짐을 찾는 것은 잠간 해맸지만 티켓에 번호를 보고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나가자 한제임스 선교사님이 데빗과 함께 나왔습니다.


3. 빈 센타에서

빈센타에 가자 한사라 선교사님과 자녀들 그리고 양다나엘라 선교사님이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선교사님은 메시지 준비 때문에 집에 있다가 조금 후에 왔습니다.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두시로 먹을 수 없는 시간이지만 성의를 생각하여 기쁨으로 먹었습니다. 서로 간에 은혜를 나누고 나에게는 다윗이 방을 주어서 그곳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 때문에 방을 빼앗겼기 때문에 자지 내 방에 들어오고 섭섭해하는 눈치였으나 기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부모님께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조금 미안하였습니다. 나를 영접하기 위해서 어린아이까지 희생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잠을 자고 이튿날을 맞이 하였습니다. 수양회가 있는데 아무도 새벽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 사라 선교사님이 민박을 시작한 이래로 기도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하는 수양회에 많은 사탄의 역사가 있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제임스 선교사님과 둘이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 선교사님은 독일어로 메시지를 전해야하는데 한글로만 완성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다니엘 선교사님의 한글 메시지의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창세기 15징 말씀으로 하나님이 절망에 빠진 아브람을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고 그렇게 많은 자손을 약속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그것을 믿으니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통해서 뭇별을 보게 하신 하나님 자체를 믿는 믿음을 중심으로 수정하여주었습니다. 이는 아브람이 깨달은 복음으로 복음의 진수를 잘 말해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어독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바를 시켜서 독어로 번역하도록 하였습니다. 에바 형제는 5월에 대학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입 졸업 검정고시를 합격한 상태였습니다. 에바는 충성스럽게 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는 비엔나 대학 3학년인 장양 자매가 와서 에바와 함께 찬양을 준비하였습니다. 나는 천안에서 보낸 선물을 풀어서 나누어주니 모두 반가워하였습니다. 한제임스 선교사님이 연필깎이를 찾았는데는 시간이 부족하여 준비하지 못하였으니 다음에 준비하겠다고 하니 이해하였습니다. 우리의 선물 하나하나고 얼마나 선교사님들에게 귀한가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곳에서 필요한 선물을 많이 보내 고와 사모로 인하여 감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한제임스 선교사님은 고와 사모님이 꼭 비엔나에 오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나에게 여러 번 말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전할 메시지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를 다시 수정하며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분반 공부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저녁때 되었는데 장양 자매가 가지 못하고 은비 미소 자매도 생일 파티가 있어서 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사단이 일하기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천안 새벽 기도시가에 맞추어서 기도요청을 하였습니다. 장양 자매는 수양회를 다음주로 알고 여러 가지 약속을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여러문제가 터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사라 선교사는 새벽 다섯시에 만박집을 가고 제임스 선교사님은 폴란드에서 오시는 박엘리야 드보라 선교사님을 마중 나갔습니다. 나는 다니엘 다니엘라 선교사님과 함심 기도하였습니다. 새벽기도에 다니엘 다니엘라 선교사님에게 나오라고 하였는데 이분들은 센타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분들은 수양회 준비로 바빠서 이불도 없이 쇼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분들의 순종이 고마웠습니다. 나는 아침에 금식을 하고자 하였지만 손님들이 있어서 금식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식사를 해야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폴란드 선교사님이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제임스 선교사님 집이며 센타로 쓰는 가정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은 가정을 오픈하고 지금까지 가정교회 역사를 셤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엘리야 선교사님 가족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엘리야 선교사님은 한양 센타출신인데 나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대화가 통하였습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하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성령의 은사를 우리가 수용하지만 말씀 사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성령의 역사를 섬겨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분도 나의 의견에 공감하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독일 본센타에서 지원나온 엘케 목자와 그의 양이 마틴 목자가 합류하였습니다.

4. 수양회에서

수양회 참석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폴란드팀과 함께 수양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본래 헝가리 팀이 같이 와서 가기로 하였는데 양들이 오지 않아서 늦게 온다고 하여 우리만 두 대의 차로 나누어갔습니다. 천안에서 기도를 해준 덕분에 장양 자매도 가겠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장양 자매와 미소 은비 자매를 데리고 조금 늦게 온다고 하였습니다. 수양회 장소는 튤란이란 곳인데 차로 50분 정도 되는 거리로 천안에서 청주가는 거리였습니다. 이곳은 로마 유적지가 있고 박물관도 있고 아름다운 도나우 강이 옆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나우강은 유럽의 9 개국을 거쳐서 흐르는 유명한 강입니다.

수양관에 도착하여 다니엘선교사님과 다니엘라 선교사님 그리고 엘케 목자님이 중심이 되어서 데크레이션을 섬겼습니다. 앞에는 하나님의 희망이라고 쓰고 사라 선교사님이 수를 놓은 아브람이 뭇별을 바라보는 그림을 걸어놓았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위하여 등불을 가리는 일들을 하고 의지배치를 하며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서 우리는 도나우 강이 흐르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들국화가 잔디가 있는 것에 많이 피어있었고 빨간 튤립이 아픔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마틴 목자와 식사를 하였습니다. 마틴 목자에게 한국에 온 느낌과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직업학교 시험에 여러번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자님의 방향에 순종하였을 때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순종과 경외심을 축복하십니다. 그후에 그는 호텔에서 서빙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다른 목자님들을 비아피로 섬기는 훈련을 받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독일 목자에 의해서 변화된 독일 양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알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미지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겉은 아름다운데 뒤로 돌아가보면 지저분한 부분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각국에서 선교사님들이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는 고기와 빵이 나왔는데 대체로 맛이 있고 풍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싱스를 섬기기로 한 슬로바키아 선교사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양다니엘라 선교사님이 찬양을 서툰 영어로 인도하였습니다. 공식 언어는 영어였습니다. 그러나 은혜롭게 인도하였습니다. 슬로 바키아의 선교사님은 방바울 에스더 선교사님이 분명히 출발하였다고 하였는데 연략도 되지 않고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후에 체코에 알레스 목자님이 요한복음 3장 1-16절로 하나님의 희망은 영생이다라는 제목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체코어로 메시지를 전하고 영어로 번역된 자막이 나왔습니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서 반 정도 읽으면 지나갔습니다. 나중에는 피곤하여 졸렸습니다. 알레tm 목자는 유일한 현지 목자입니다. 그는 이번이 세 번째 말씀인데 아주 확신있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의 희망은 니고데모가 추구한 부나 명예나 사랑이 아닌 영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녁 메시지 후에는 코로 아티아에서 온 배마리아 선교사님이 유럽 수양회에서 출 춤을 지도하였습니다. 이 춤을 오스트리아에서 유럽 정상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춘 것이라고 합니다. 비디오를 보고 연구하여 지도하는데 나는 정말로 죽었다가 깨어나도 어떻게 추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마리아 선교사님은 춤을 잘 이해하고 지도하였삽니다. 어린이들도 추는데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휠씬 잘 추었습니다. 참고로 18명의 이세가 참석하였는데 이들 가운데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어린아이도 8명 정도는 되었습니다. 한파울라는 돌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아무도 울거나 떠들어서 수양회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리디아는 싱어롱을 인도하였습니다. 경진이 나이쯤 되는 대빗도 오스트리아 특송때 함께 나와서 특송을 진지하게 블러서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세들이 유럽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비 미소자매는 왔지만 장양 자매는 오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춤을 보다가 너무 졸러 12시가 가까이 되었을 때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춤을 12시 반까지 추고 1시에 잤다고 합니다. 나는 에바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기도하려고 나가려니 에바가 같이 일어났습니다. 홀에는 문이 잠겨져 있어서 도나우 강가로 갔습니다. 도나우 강에는 큰 백조가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 백조가 커서 무섭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배들이 관광객과 화물을 싣고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나우강 가의 의자에 앉아서 선교사님들과 천안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후에 분방장들과 잠시 말씀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분반장은 독어권의 제임스 선교사 한국어 자매에 신한나 선교사님 영어권의 마틴 목자였습니다. 나는 서툰 영어지만 마틴 목자에게 영어로 설명하고 부족한 것은 제임스 선교사님이 독어로 통역하였습니다. 그후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헝가리에서 오신 김사라 선교사님이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종로에서 파송되었는데 나를 종로에서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분반공부를 하였습니다. 말씀은 마가복음 2장에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분반은 형제 지부장들이 주로 참석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배요셉선교사님. 폴란들의 박엘리야 선교사님, 오스트리아의 양다니엘 선교사님 헝가리의 강여호수아 선교사님이었습니다. 강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종로 인턴으로 있다가 파송되어서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중풍병자 친구들의 믿음과 병을 고치기보다 먼저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배요셉 선교사님이 믿음으로 영주권을 얻은 간증은 으혜가 되었습니다. 그를 고용한 삼성의 사장도 변호사도 그가 영주권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깨닫고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사장과 변호사에게 손을 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루차티아의 영주권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크루아티아의 담당자를 만나서 자신은 크루아티아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에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 살고 싶으니 남을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친절하게 시험을 보고 준비해야할 서류를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를 쓰시고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박수를 쳐서 그의 믿음을 격려하여주었습니다. 분반공부를 한 목자님들은 오랜만에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이 얼마나 말씀에 목말라 있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제강의 2강은 엘케 목자가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독일어로 메시지를 전하고 영어 자막이 나왔습니다. 이분은 한글 번역본을 나누어주어서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엘케 목자는 본래 퀼론 센타에서 본 센타로 시집 갔습니다. 그는 남편과 싸우다가 화가 나서 접시에 있는 수프를 얼굴에 던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씻고 나서 기쁜 얼굴로 자신을 감당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오빠는 동성 연애자입니다. 지금 오스트리아나 독일에는 동성연애자가 많습니다. 깨어진 가정이 많습니다. 한 아이는 아버지가 셋인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한 아이는 어미가 셋인 어미니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의 부모들의 이런 면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들이 변화되어 아름다운 가정교회를 이루고 목자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알게 됩니다.

오후에는 소감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체코에서 왔습니다. 그는 신한나 선교사님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체코 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성 센타 박무디 목자님의 양입니다. 그는 인턴 훈련을 받아서 매우 순종적이고 섬기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훈련 받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연신 감탄하였습니다. 또한 선교사님들이 대부분 천안 홈피에 와서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선교사님들이나 다른 분들에게 귀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분들에게 내가 가지고 간 에베소서 빌립보서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분반 소감발표를 할 때 체코의 또다른 지부에서 윤에스라 선교사님이 도착하였습니다. 이분은 나를 보자마자 아! 영화를 잘 만드는 천안 센타라고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그곳에 배우로 나온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천안의 유명한 감독 이진휘 목자를 소개하였습니다.

저녁에는 특강으로 제가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를 전하였습니다. 크게 세가지로 전하였습니다. 첫째는 성경의 주제인 성부 성자 성령님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하며 둘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하고 셋째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한 자매 목자의 질병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평신도로 말씀을 연구하게 되었는가를 전하였습니다. 영어로 전할 믿음이 없어서 영어 번역본을 나누어주고 통역을 부탁하고 한국어로 전하였습니다. 강의안을 썼지만 강의안을 참고로 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깨달은 순간을 말할 때는 눈물이 나서 눈물을 닦아가며 메시지를 전하여야했습니다. 선교사님들도 대체로 은혜를 받았다고 나에게 말을 하여 나를 그곳에 보내신 성령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특강이 있은후에 각지부별로 찬양을 불렀습니다. 각나라 팀들이 합심 동역하였습니다.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자녀들이 힘있게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도 다뉴브강 가에 가서 그곳에서 강물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돌아와서 아침 메시지로 다니엘 선교사님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독어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좀떠듬 거렸지만 독어가 인생문제인 다니엘 선교사님이 이 말씀을 전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독어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고 여러번 포기하였지만 하나님은 은헤로 그가 독어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니엘 목자님을 독어 메신저로 세우신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세들의 성장을 통하여 중부유럽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성장하면 하나님께서 커다란 열사를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비엔나로 오는 도중에 나는 신한나 선교사님과 같은 차를 탔습니다. 그분은 차로 오면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였습니다. 남편이 암으로 사경을 해맬 때에 그는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은 천국으로 갔습니다. 체코에 와서 남편이 하던 가게에 앉아 있는데 모든 물건을 볼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위로 해 줄 때도 남편생각이 나서 멍하니 앉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욥기를 열 번이나 읽었습니다. 그때는 그는 욥기 41장 11절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누가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갚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씩 우리에게 맡겼다가 필요한 때 가져가는 것입니다. 한나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남편을 한나 선교사님께 맡겼다가 때가 되자 가져 가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도원에서 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다 응답하여주시고 그 후에 사업을 번창하게 하시고 한 명의 목자 알레시 형제를 세우신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오묘하시고 신기하게 일하시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보고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와서 다니엘 선교사님의 인도로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전과 오브트리아 대학을 보았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함스브르크 왕가에서 유럽 전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과거의 많은 문화유산을 갖고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히틀러도 오스트리아 태생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도 많이 나왔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3-4개국어는 자유롭게 말합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변화되면 큰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관광을 하는 동안 신한나 선교사님과 박엘리야 선교사님과 대화를 많이 하였습니다. 특히 신한나 선교사님은 나에게 천안에서 체코 선교사를 한 명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언어를 하는 동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1000유로의 월급을 주며 노동허가서를 주고 5년 내에 영주권을 얻게 해주겠다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저는 선교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영상 목자님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상 목자를 이곳에 보내사 체코 영혼들을 살리는 역사에 사용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관광후에는 소미네 민박에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그 많은 인원을 저녁 식사로 맛있게 섬기셨습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다섯명의 어머니로 세명의 양과 일대일하고 민박을 하여 가정을 부양하고 천안까지 써포트하는 열국의 어미와 같았습니다. 저녁에는 집에 들어와 잠을 잤습니다.

5. 오스트리아 선교사님들을 도우며

이튿날은 누가복음음을 3강으로 나누어 한강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말을 많이 하여서 일강의 한문제밖에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슬라바키아를 심방가고자 하였습니다. 네비를 이용하여 갔는데 처음에 네비의 말을 듣지 않다가 방황하여 한시간 길을 두시간 걸려서 갔습니다. 슬로바키아에는 장바울 장에스더 선교사님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장바울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강원대 법대를 졸업하고 수원지청에서 안정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럽 선교여행을 하고 나서 슬로바키아에 유비에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표를 내고 어학연수로 오고자 하였습니다. 직장에서도 사표를 육개월 보류하겠다고 하고 가족들도 많이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사표내고 어학 연수를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단할 때 체코에 한국 대사관이 생기고 그가 어학연수를 맞쳤을 때 하나님은 대사관 직원으로 그를 채용하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말씀고부 하며 처음에는 마음이 많이 닫혀 있었지만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그분들은 수양회에 참석을 위해서 슬로바키아에서 비엔나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서 한승수 총리가 슬로비키아에 방문하여 며칠 날밤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빈에 왔을 때 그들은 수양관 가는 장소를 몰랐습니다. 전화를 하면 되지만 늦게 와서 미안해서 전화를 못하였습니다. 에스더 선교사님은 바울 선교사님에게 길도 제대로 알아 놓지 않았다고 핀잔을 하였고 둘을 대판싸우고 다시 슬로바키아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이를 이야기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을 저질러놓고 어떻게 수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방문해주신 것에 대해서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나도 성령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이분들은 장아브라함 목자님의 간증을 하여주었습니다. 장아브라함 목자님은 약간 저는 소아마비고 지금 전주 교대를 개척하시는 목자님이십니다. 말도 어눌합니다. 이분은 홍익대 미대를 나와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이분에게 시집가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춘천센타의 김바울 목자님은 이분에게 주일 메시지를 전하게 하고 공개청혼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춘천 센타에서 가장 아름답고 양잘 치는 자매가 손을 들고 자신이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이차이도 6살 정도(정확치 않음)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여자집에서는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여자를 감금하여놓았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집을 탈출하여 드디어 믿으의 결혼하였습니다. 장아브라함 목자님은 그후에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전주 교대 교수를 하며 전주 덕진 센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정동영씨가 국회위원으로 당선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의 여인을 보면서 천안에서도 이런 믿음의 여인들이 나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밤 12시에 오스트리아에 도착하여 잠을 자고 이튿날 누가복음을 이어서 공부하였습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제임스 선교사님이나 양다니엘 선교사님 가정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자 그는 방에 들어가서 눕고 말씀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다니엘 다니엘라 선교사님만 공부하고 저녁은 외식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양식 모임에서 다니엘 선교사님께 독어 양식을 해석해보라고 하니 전혀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어 서술어를 모르고 긍정부정 의문들의 기본적인 상황을 몰랐습니다. 나는 다니엘 선교사님의 집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자습서를 가지고 한 시간 정도 공부하며 이분의 언어기초가 초등학교 수준도 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다니엘라 선교사님과 다섯 번 공부하고 시험을 매일 보아서 점수가 안 나오면 식사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실제 오스트리아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다니엘 선교사님이 다니엘라 선교사님보다 말을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다니엘라 선교사님이 설명을 해도 잘 안 통하자 주인이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니엘 선교사님은 문법은 맞지 않지만 현지인과의 대화는 더 잘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선교사님은 마음이 매우 어두웠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심고자 하였습니다. 그분은 소감에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술을 먹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장 언어 체류 양문제로 삼사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이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가정이 너무 불쌍하여 내가 가진 돈을 다 이 집에 주고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물을 하나도 사올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분들과 웍삽으로 말씀공부하고 나서 사라 선교사님을 도와야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은 오페라를 보고 도나우강 관광을 하고자 하였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였습니다. 저는 금식 기도하고 사라 선교사님을 만나서 민박으로 갔습니다. 저는 사라 선교사님과 오랜 시간 일대일로 대화를 하였습니다. 사실 사라 선교사의 영향력이 모든 오스트리아 유비에프에 베어있었습니다. 나를 서포트하는 것도 사라 선교사의 믿음이고 나를 초청하는 것도 사라 선교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민박을 통하여 많은 물질을 옮기는 것도 사라 선교사의 믿음입니다. 다섯명의 아이를 낳은 것도 그곳에 장양 에바 미소 은비를 키우는 것도 사라선교사의 믿음입니다. 다섯명의 자녀가 너무나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주 순종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집안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성령이 충만하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라 선교사님은 이런 믿음으로 믿음이 어린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였습니다.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라 선교사님께 아브람을 부르신 소망의 하나님을 보게 하였습니다. 죄인들을 긍휼의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소망을 심지 않으면 그들이 자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한제임스 선교사님이 성령을 잘 모른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성령을 모르니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은 성령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판단하느냐고 맞받아쳤습니다. 저는 사라 선교사에게 제임스 선교사님이 성령을 모르는 것이 아니락 말하였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은 시민권을 얻을 때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믿고 찾아가서 담당자를 만났을 때 담당자는 시장을 만나서 자신에게 영주권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물질이 떨어졌을 때 그는 엘지 담당자를 만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교수에게 연구를 하도록 하여서 이들을 통해서 물질을 벌어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를 볼 때 제임스 선교사님은 성령을 알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라 선교사님에게 바리새인과 같은 교만을 회개하라고 도왔습니다. 사라 선교사님은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도우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라 선교사를 돕고 나니 저녁 아홉시였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여서 매우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사라 선교사님을 도울 수 있는 기쁨에 돼지 구이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6. 돌아오는 길 그리고 천안에서

이튿날 제임스 선교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오전 9시에 오스트리아 공항에 갔습니다. 로션을 가방에 넣었다가 압수당했습니다. 비행기에는 액체류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다시 오스트리아에서 뮌휀, 뮌헨에서 인천으로 떠나왔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은 내가 아무 돈도 없는 것을 알고 금일봉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제임스 선교사님과 그리고 다니엘선교사님을 가정을 생각할 때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는 비행기 안에서 헬라어를 공부하고 창세기 15장 오절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소망이 떠올랐습니다. 유럽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소망이 있습니다. 천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자 기도하였습니다.

천안에 와서 저는 마가 모니카 목자님을 중심으로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재훈 형제가 휴학을 했다는 말을 듣고 인호 목동이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진휘 목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침에 센타에 와서 두시간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휘 목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임경미 목동과 허진영 목동에게 전화를 하여 수양회 참석을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하셔서 감사하였습니다. 또 오늘은 경미 목동이 실제 참석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또한 기도한 후에 남선영목자님을 이삭 목자님과 심방갔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서아브라함 목자님을 만나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녁에는 학생회 말씀공부를 인도하고 진휘 목자 메시지체크를 하였습니다. 밤에는 인호 목동과 전화하여 그가 예배에 절대적으로 나오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남선영 목자님과 재훈 형제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버지 병간호로 참석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금식하며 한 시간 기도하고 전화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오면 참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어미나와 통화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간호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로 가고 재훈 형제가 참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선영 목자에게 전화했는데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임경미 목동도 올라온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또 갑자기 김은숙권사님이 간증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나는 나의 유럽 여행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을 정확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크신 일을 봄학기 이루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뭇별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자